해외여행/2014년해외여행

[스크랩] 낙양 용문석굴-하나

경운산(자영) 2014. 9. 6. 15:36

낙양에서 남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진 용문석굴의 동서 두 산 사이를

이하(伊河)라는 강이 흘러 용문석굴의 경치는 아주 수려하다. 

낙양은 과거에 많은 조대의 도읍지였고 이 곳이 황궁문을 마주하고 있어서

용으로 불리우는 황제의 문이라는 의미에서 용문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길이 약 1킬로미터의 용문의 동서 두 산 암벽에는 2300여개의 동굴이 뚫려져 있고

이런 동굴들에 약 10만여존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것이 바로 중국 4대 석굴의 하나인 용문석굴이다. 

 

이 곳에 왜 이렇게 많은 불상을 만들었는지 그 답을 보려면 용문석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용문석굴은 기원 5세기경부터 조각을 시작했는데 때는 중국의 북위(北魏)조대였고

북위왕조의 황제는 불교를 신앙했다. 

황제가 불교신자니까 전국적인 범위에서 불교사찰과 불상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아졌다. 

그 때는 불상을 많이 조각할수록 더 많은 불교의 은덕을 받는다는 설이 있었고

그래서 황제는 많은 은덕을 보기 위해 10만여존의 불상을 새겼다.

황제의 힘을 이용하여서 말이다.

그리고 용문의 암석질이 아주 좋아서 풍화작용에도 쉽게 모양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 곳에 석굴을 만들기로 했다.

 

용문석굴은 선후로 400여년의 건설사를 거쳐 완공에 이르렀다. 

그리고 건설과정에 두 조대를 거치기도 했다. 기원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이어진

북위시대에 시작되어 기원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이어진 당조(唐朝)에 완공되었고

그래서 오늘의 용문석굴에서 볼수 있는 문화재 90%이상이 이 두 조대에 만들어진것이다. 

 

북위와 당조가 모두 불교를 신앙하지만 필경 두 조대이기 때문에 풍격이 다르다. 

그래서 오늘도 용문석굴에 가면 서로 다른 풍격의 석굴과 불상을 볼수 있다.

용문석굴에서 역사가 가장 긴 빈양(賓陽)동굴의 세 석실에서 북위시대와 당조때의

서로 다른 불상을 비교할수 있다.

 

용문석굴에서 근무하는 양정(楊亭)씨는 이 세 석실 중 가운데 석실에는

불조 석가모니가 모셔져 있는데 얼굴이 갸름하고 목이 가늘게 길고 몸매도 날씬하다고 하면서

이는 북위시대의 풍격이라고 했다. 

당조때는 풍만한것이 미로 인정되었고 불상도 풍만함을 특색으로 한다. 

그래서 남쪽과 북쪽의 석실의 불상은 아주 풍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당조때 조각을 마친 불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출처 : 김자영카페
글쓴이 : 경운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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