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부용화...
부용화 .. 청도 운문사로가는길옆에는 언듯보면 무궁화같고 또 다른모습으로보면 접시꽃같은 무리들이 도로가에 만발해 있다 언제인가 김해시 임호산밑의도로에서도 본적이있는 꽃인데 여태까지 정확한 이름을 모르고있다가 며칠전에서야 이꽃이 부용화이라는것을 알았다
한여름에 지칠줄모르고 피어있다가 해질무렵에는 아름다운자태를 접는 수줍은모습에서 시나 소설의 단골이 되었나 보다 차창밖에서 지나가는 차바람에 살랑이는 부용(芙蓉)을 보면서 도데체 어떤 사연을 머금은 꽃이길래 나를 유혹해오는 너의 모습에서 잠시숙연해저본다...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정의(正義)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을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나면 우리 모두다 덮이겠느냐.
-고은의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 中
부용화(芙蓉花) :연꽃芙에 연꽃蓉 딴이름: 산부용, 땅부용, 부용목연, 목부용 낙엽 관목으로 무궁화과에 속하며, 꽃, 잎의 생김새가 거의 비슷해서 사람들은 무궁화라고 하지요. 부용이 더 크고 꽃색도 화려합니다. 점도 확연한 구별법입니다. 거의 손바닥 하나를 다 가릴 만한 크기에 정말 반할만 합니다.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
옛날 성천(成川)에 한 기생이 있었던데, 미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사람들은 그녀를 '부용'(芙容)이라 불렀다. 그녀는 이름을 기적(妓籍)에 올린 기녀였지만, 시(詩)를 즐기고 기개를 지니고 있어 함부로 몸을 더럽히지 않았는데 마치 부용꽃과 같았다. 그녀가 16세 되던 해 성천군에서 백일장이 열렸다. 그녀는 그 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壯元)을 차지했다. 그 당시 부사(府使)는 김이양(金履陽)으로 시를 몹시 사랑했다.
김이양의 문학에 심취한 그녀는 백발인 그와 인연을 맺고, 15년 동안이 동고동락하며 시가(詩歌)를 나누었다. 김이양이 늙어서 세상을 떠나자, 3년상을 정성껏 치른 부용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욱 깨끗이 지켰다. 세월이 흘러 죽을 때가 된 그녀는 몸을 씻은 다음, 가까운 사람을 불러서 유언을 남겼다.
부용꽃은 비록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기는 하지만, 밑쪽에서 위쪽으로 계속해서 올라가며 꽃을 피운다. 꽃말은 '섬세한 아름다움'이고, 동부 아시아의 따뜻한 중국이 원산지이다.
아래는 운초 김부용의 부용상사곡 입니다. 황진이, 이매창과 더불어 조선시대 삼대 시기로 꼽히는 김부용은 1800년경 평안남도 성천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습니다. 김이양에 대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부용상사곡은 글자가 차례로 늘어나 탑모양을 이루는 보탑시(寶塔詩)로 시의 양과 질에 있어 우리 문학사의 큰 자랑거리로 남아있습니다. 운초 김부용의 다른 시는 천안향토사 연구소에서 펴낸 '운초 김부용의 생애와 문학'이라는 책과 평민사에서 펴낸 저자 허경진의 운초 김부용 시선에 있습니다. 아래는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을 한글로 풀이한 글입니다.
이별하옵니다/ 잠자리에 누었으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된들 백 년 정심이야 어찌 바꿀 수 있으랴/ 부용화를 보면 볼수록 그꽃의아름다움에 정신을 내뱉습니다 참 아름다운 꽃이지요...난 무궁화가 바람핀꽃인줄알았는데... ㅎㅎㅎ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미소가없으면 무슨 꽃이며 기쁜사연이든지 슬픈사연을 간직하지않은꽃이 어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꽃이랴.... 2009.08.16.청도 문복산 댕겨오다 질바닥에 핀 부용화를 보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