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에서는 조매보기힘든광경이다 그래서 사무실에잇는 디카로 몽창시기 박았는데...

컴에올리려니 디카에 내장되어있는 파일을 컴이 못읽는다... 비록 아마추어의작품이지만 고민고민하다 ...

삼정전자에가도 안된다고한다 그러나 버리기에는 너무아깝고 이런광경은 몇년이 지난후에나 가능하다는 생각에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끝에 이그림을 살려내었다

그래서 이그림이 보통소중한기아니다 ... 열받아서 디카를 새로구입했을정도이니까 ㅎㅎㅎ

이 매화나무는 사무실옆에있는 매화나무이기에 ... 여기서 잠깐 매화를 유독좋아한 선현이 아마도 퇴계이황선생이지싶은데... 그래서 잠깐소개를 해볼까하고 ㅎㅎ

매화시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뜰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차지)//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 퇴계 이황의 "매화시첩"중에서-

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막향요금탄절현)//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을 말라
- 퇴계 이황이 두향에게 보낸 시-

이황선생의매화사랑은 두향이에게서 영향을받았는지... 물론 믿던지말던지... 그럼 퇴게선생과 귀생두향이의 이바구를 한번 ...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매화(梅花)를 끔찍이도 사랑했답니다. 그래서 매화를 노래한 시가 1백수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답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두향이는 18살 때였다고 합니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선생은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고 홀로 부임하였으니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었답니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 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답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고, 드디어 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어습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고는 시 한 수를 썼답니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제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 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습니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하나가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이 보듯 애지중지했습니다. 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 하였답니다.

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이것이었습니다.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습니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前 身 應 是 明 月 . 幾 生 修 到 梅 花).퇴계 선생의 시 한 편입니다.

선생이 두향을 단양에 홀로 남겨두고 떠나 말년을 안동 도산서원에서 지낼 때 어느 날 두향이 인편으로 난초를 보냈답니다. 단양에서 함께 기르던 것임을 알아본 선생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답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자신이 평소에 마시던 우물물을 손수 길어 두향에게 보냈습니다. 이 우물물을 받은 두향은 차마 물을 마시지 못하고,
새벽마다 일어나서 퇴계의 건강을 비는 정화수로 소중히 다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정화수가 핏빛으로 변함을 보고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느낀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먼 도산서원까지 4일간을 걸어서 찾아갔습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습니다. 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답니다.
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에 그대로 피고 있답니다 지금도 퇴계선생 종가에서는 매년 두향이의 묘를 벌초하고 그녀의 넋을 기린답니다. 선생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인정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애닳은 사랑을 잊지는 않는 것이 반가의 예인 모양입니다.
바로 밑에 두컷은 삼성디카 새로산 기념으로다가 한번 박어본것입니다 ㅎㅎ
이렇듯 매화에도 슬픈 전설이 있다는것을 ... ㅎㅎㅎ |